
[환경일보] “달은 지고 까마귀는 우는데 찬 서리가 하늘에 가득하다(月落烏啼霜滿天.)”
당나라 시인 장계의 한시 ‘풍교야박’ 첫 구절은 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맑고 서늘한 가을밤의 정취를 선명하게 그려낸 표현으로 꼽힌다. 사방을 뒤덮은 냉기를 마치 온 하늘까지 얼어붙은 것처럼 느꼈던 옛사람들의 감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가을밤의 이 매서운 냉기는 시적 정취로만 남아 있지는 않다. ‘태종실록’에는 태종 병술년 기해일(서기력 1406년 9월 24일) 청양현에 서리가 내려 메밀이 얼어 죽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이는 지난날에도 서리가 농민들을 위협한 재해였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서리는 오래전부터 시적 대상이기도 하고 현실의 삶에 영향을 주는 현상으로 우리 일상에 자리해 왔다. 인상적인 점은 서리는 아무 날 밤에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리는 보통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바람이 약한 날 새벽에 짙게 내리고, 기온도 큰 폭으로 떨어진다. 흐린 날보다 맑은 날 밤이 더 추운 이 역설적인 현상의 배경에는 ‘복사냉각’이라는 기상학적 현상이 숨어 있다.
지표면은 낮 동안 태양으로부터 단파복사 에너지를 흡수해 데워지고, 태양이 지고 나면 반대로 자신이 흡수한 열을 장파복사 형태로 대기 중으로 방출한다. 이렇게 지표면이 밤사이 복사에너지를 잃으면서 스스로 냉각되는 현상이 바로 복사냉각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맑은 날이든 흐린 날이든 밤이 되면 지표면은 항상 복사냉각을 겪는다.
문제는 그 냉각의 정도가 하늘 상태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데 있다. 구름은 지표면에서 방출되는 장파복사를 흡수했다가 다시 지표로 되돌려 보내는 ‘이불’ 역할을 한다. 구름이 두껍게 낀 밤에는 지표면이 내보낸 열의 상당 부분이 구름층에 막혀 다시 지표 부근으로 재복사되어, 열 손실이 완만하게 이루어지고 기온 하강 폭도 크지 않다.
반면,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건조한 밤은 이러한 ‘이불’이 사라진 상태와 같다. 지표면이 방출하는 장파복사가 상대적으로 쉽게 대기권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열 손실이 극대화되고, 그 결과 지표면과 지표 부근 공기의 온도가 큰 폭으로 떨어진다. 여기에 바람이 약해 대기가 안정적으로 정체되면, 찬 공기가 지표 부근에 그대로 고이면서 냉각 효과는 한층 강화된다. 이렇게 복사냉각으로 지표면 온도가 어는점 이하로 내려가면, 공기 중 수증기가 지표면에 직접 얼음 결정으로 달라붙으면서 하얗게 서리가 형성된다.
서리는 신비로운 경관을 선사하곤 하지만, 가을걷이를 앞둔 농가에는 심각한 위협이 된다. 배추, 무, 고추 등 서리에 약한 작물은 세포 내부의 수분이 얼면서 조직이 파괴되어 잎이 무르거나 검게 변하는 냉해를 입는다. 과수의 경우 늦게까지 달린 과실이 동해를 입어 상품성을 잃기도 하고, 봄철에는 어린 모종이나 발아 직후의 작물들이 서리 한 번에 전량 고사하는 피해도 겪는다.

이와 같은 서리 피해를 줄이기 위해 기상청은 기상기후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날씨마루’를 통해 읍면동 단위의 ‘서리 발생확률 예측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서리가 내릴 것이 예상되면 농업 관계 기관, 농업인과의 실시간 양방향 소통 채널을 통해 ‘서리 가능성 정보’를 제공하여 서리에 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천 년 전 장계가 바라본 서리 가득한 밤하늘도, 오늘날의 서리 내린 새벽도, 그 바탕에는 같은 복사냉각의 원리가 흐르고 있다. 가을 하늘이 유난히 청명하게 느껴지는 날, 다음 날 아침 기온과 서리 발생 가능성을 함께 살피는 지혜가 한 해 농사를 지켜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기사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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