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특별기획

[숨비소리와 밭담, 제주가 지키는 유산 ①]제주 해녀와 돌담, 세계가 인정한 살아있는 유산

더좋은환경 2025. 9. 10. 13:52

밭담과 해녀가 지켜 온 GIAHS··· 위기와 보전의 갈림길
세대 잇는 해녀 어업, 경험과 규범이 지속 가능성의 토대

농경지 90% 지탱하던 밭담··· 개발 압박 속 급격한 훼손
“GIAHS의 미래, 주민·관광객 모두가 관리·전승에 힘써야”

 

제주 해녀와 밭담은 유네스코가 아닌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인정한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이다. 그러나 화려한 이름 뒤에는 사라져 가는 해녀와 무너져 가는 밭담이 있다. ‘등재’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 이번 기획은 그 간극을 독자와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제주 밭담 옆으로 유채꽃이 활짝 피어 있다. /사진제공=명소IMC

[제주=환경일보]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서 가치를 유지하려면,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는 보전·활용 체계가 필수입니다.”

환경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고제량 제주생태관광협회장의 이 말은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 Globally Important Agricultural Heritage Systems)이 단순히 ‘등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이 핵심임을 보여준다.

GIAHS, 단순 ‘등재’가 아닌 ‘지속’의 과제

GIAHS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2002년부터 지정해 온 국제 인증 제도다. 농업과 생태, 문화가 긴밀히 얽혀 형성된 전통 농업 시스템을 보전하고, 이를 기반으로 지역 발전과 생물다양성 보존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 목표다. 등재를 위해서는 ▷식량과 생계 보장 ▷생물다양성 및 생태계 기능 ▷지식·전통 기술 ▷문화·사회 조직 ▷탁월한 경관 등 5개 분야를 충족해야 한다.

제주해녀어업은 2023년, 제주밭담은 2014년 각각 GIAHS에 등재됐다. 신청서에 따르면 제주해녀어업은 고려시대 문헌부터 기록이 남아 있으며, 2022년 기준 103개 어촌계가 4000여 명의 해녀를 포함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어촌계는 금채기·금지체장 같은 규약을 명문화하고, TAC(총허용어획량) 제도를 대한민국 최초로 도입해 소라 자원 고갈에 대응하는 등 바다 자원을 관리하고 있다.

제주해녀어업은 고려시대부터 이어온 전통으로, 103개 어촌계가 규약과 TAC 제도를 통해 바다 자원을 지켜온 공동체 문화다. /사진제공=명소IMC

제주밭담은 총길이 약 2만2000km(2005년 기준 추정치)로 제주의 농경지 경계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기록상 15세기 조선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축조됐고, 밭담을 쌓는 기술과 관리법은 세대를 거쳐 전승됐다. 밭담은 강풍을 분산시키고 토양 유실을 막는 물리적 기능과 동시에, 밭을 구획하고 공동체 간 경계를 명확히 하는 사회적 기능을 수행해 왔다.

위기에 놓인 GIAHS 등재 유산, ‘해녀’와 ‘밭담’

그러나, GIAHS에 등재된 두 유산 모두 위기 상황이다. 해녀 수는 1965년 2만3000명에서 현재 3226명(2022년 기준) 수준으로 감소했고, 평균 연령 또한 70세를 넘어섰다. 밭담은 농지 전용과 관광 개발로 인해 일부 구간이 훼손되거나 콘크리트 담장으로 대체되고 있다. 2001~2005년 사이 표본 조사에서 한경은 26.2%, 성산은 11.2%, 신촌은 3.2%, 남원은 7.1%, 대정은 10.8%, 애월은 11.6%의 밭담 훼손율을 기록했으며, 전체적으로 11.7%(연평균 2.9%) 감소가 확인됐다.

작업자들이 제주 밭담 정비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명소IMC

 

권미선 제주해녀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환경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관광객이 해녀나 밭담을 보고 흥미를 느끼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 관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교육과 인식 개선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고제량 제주생태관광협회장은 무분별한 관광보다 체험형, 교육형 프로그램으로의 전환을 강조했다. 그는 “지역 주민이 주도하는 관리 체계를 강화해야 세계가 인정한 유산을 미래 세대에 물려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제주도는 GIAHS 유산 보전을 위해 해녀축제, 밭담 걷기축제 등 주민 참여형 행사를 운영하며, 이를 통해 관광 수익이 다시 보전 사업으로 환원되는 구조를 모색하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은 단순히 ‘유산 구경’에서 끝나지 않고, 그 가치와 관리 방식까지 체험하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제주 바다와 육지, 세대를 이어온 생존의 지혜

“바다를 오래 쓰려면 욕심내면 안 돼. 오늘 조금 덜 따더라도 내일, 내년에 다시 나올 수 있도록 남겨 둬야지.”

고봉순 종달어촌계 회장은 50년 넘게 바다와 함께 살아온 경험에서 우러난 말을 꺼냈다. 그는 예전보다 물이 탁해지고 해산물이 줄었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지자체나 외부에 건의해 봤냐는 물음에는 “세월이 그런 거지 뭐”라며 조용히 웃었다. 오랜 세월 바다를 지켜 온 만큼 변화에 대한 인식은 있지만 체념이 섞인 태도였다.

반면, 전유경 신산어촌계 해녀는 목소리가 달랐다.

“물질하다 보면 쓰레기도 많이 보이고, 미세플라스틱이 걱정돼요. 어촌계 회의에서 이런 얘기를 나누고, 필요하면 지자체에도 알립니다.”

젊은 해녀답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에 적극적이었다. 그에게 바다는 단순한 생계의 터전이 아니라, 후대에게 온전히 물려줘야 할 자산이었다.

제주 해녀의 물질 모습 /사진제공=명소IMC

이러한 세대별 시각 차이는 해녀어업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하게 한다. 고참 해녀들이 축적한 경험과 규범이 바다를 지켜 온 기둥이었다면, 젊은 해녀들은 그 기반 위에서 새로운 대응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환경 변화 속에서 지속 가능한 해녀어업이 가능하려면, 두 세대의 시각과 노력이 함께 이어져야 한다. 신청서에도 어촌계가 채취 시기·체장 제한, TAC 적용 등 자원 회복을 위한 규약을 운영해 온 사례가 기록돼 있다.

제주 밭담은 바다와 다른 방식으로 생존의 지혜를 전해 준다. 고제량 협회장은 “제주 밭담은 돌 하나하나가 다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 밭담 GIAHS 신청서에 따르면, 밭담은 지역 경작지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2001~2005년 사이 표본 조사에서 전체적으로 약 11.7%(연평균 2.9%)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여러 연구기관에서 조사한 결과, 각 수치는 조금씩 다르지만 밭담의 훼손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이에 따라 제주도는 밭담 복원 사업을 통해 주민과 전문가가 함께 축조·보수 기술을 전수받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유산을 지키는 주체는 결국 ‘사람’

제주해녀어업과 제주밭담은 바다와 육지라는 상반된 환경에서 발전했지만, 공통적으로 공동체 규약과 세대 간 지식 전승이라는 토대를 공유한다. FAO가 부여한 ‘세계중요농업유산’이라는 명칭은 이들의 가치와 지속 가능성을 국제적으로 인정한 것이지만, 그 가치를 지키는 주체는 현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고봉순 회장과 전유경 해녀, 고제량 협회장, 그리고 권미선 학예연구사의 말처럼, 이 유산의 미래는 제도를 넘어 사람들의 손과 마음에 달려 있다. 세계가 인정한 가치가 이름에만 머물지 않으려면, 현장을 찾는 우리의 태도와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GIAHS에 등재된 제주 해녀어업과 밭담은 결국 현장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손과 마음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이 유산이 미래에도 살아남으려면 지역사회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하다. 우리 모두의 작은 관심과 행동이 더해져야 한다.

제주 해녀어업과 밭담의 지속을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노력에 더해 우리 모두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사진=환경일보DB

관광객이라면 어촌계가 정한 금어기와 출입 제한을 존중하고, 밭담을 훼손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지역에서 난 수산물과 농산물을 소비하는 선택은 곧 공동체의 자율 관리 체계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또한 해녀들이 매일 마주하는 미세플라스틱과 밭담 주변의 쓰레기를 줄이는 일은 결국 우리의 생활 습관에서 비롯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해와 공감이다. 해녀박물관이나 밭담 복원 현장을 찾아 단순히 구경이 아니라, 그 가치와 지혜를 배우고 체험하며, 다음 세대와 나누는 일이다.

‘세계중요농업유산’은 국제적인 칭호에 불과하다. 그 이름이 빛을 잃지 않으려면, 관광객이든 시민이든 농민이든 소비자든 대한민국 모두가 지켜야 할 유산임을 자각해야 한다. 우리가 남기는 발자국이 곧, 내일의 제주 바다와 밭을 결정짓는다.

*기사 전문https://cms.hkb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038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