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고봉순, 후배 전유경이 바라본 해녀의 바다 제주
제주 해녀 공동체가 드러낸 GIAHS의 현재와 과제
양식장 오염·남획 최대 위협, 행정·제도적 개선 절실
“해녀, 단순 채취자 넘어 어장 관리자이자 환경 감시자”
제주 해녀와 밭담은 유네스코가 아닌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인정한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이다. 그러나 화려한 이름 뒤에는 사라져 가는 해녀와 무너져 가는 밭담이 있다. ‘등재’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 이번 기획은 그 간극을 독자와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제주=환경일보] 박준영 기자 = 제주 종달리와 신산리에서 해녀 두 사람을 만났다. 한 명은 반세기 넘게 물질로 생계를 일궈온 종달어촌계 고봉순 회장, 다른 한 명은 서류·면접·교육·인턴을 거쳐 어촌계 만장일치로 받아들여져 정식 해녀가 된 전유경씨다. 제주 바다를 일터로 삼지만 서로 다른 세대의 응답은, 해녀 공동체가 오늘의 바다에서 무엇을 지켜왔는지와 무엇이 위협인지 분명히 보여준다.
전유경 해녀는 “겨울에 해삼을 잘 못 찾으면 선배님들이 ‘유경이 있나 없나’ 보시고 넣어주셨다”며 초보 시절 ‘게석 문화’(생산량이 많은 해녀가 초보 해녀의 망사리에 채취물을 나눠 담는 관습)를 기억하고, 고봉순 회장은 “17살부터 원정 물질을 다녔고, 결혼하고도 애 데리고 다니며 억척같이 살았다”고 말한다.
두 사람의 말에서는 욕심을 줄이고 규정을 지키며 다음 해를 위해 남겨두는 태도가 공통으로 드러나지만, 세대에 따라 대응 방식은 다르다. 고봉순 회장은 “개인 행동은 절대 없다”며 순번 감시와 봉사 작업을 강조하고, 전유경 해녀는 양식장 지하수·배출수와 야간 ‘해루질’ 같은 구체적 문제를 지적한다.
오늘의 인터뷰는 단순한 구술 기록이 아니다. 이는 2023년 FAO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에 등재된 ‘제주해녀어업시스템’의 현장을 담은 것이다. 제주 바다의 핵심구역(1만5605ha)과 완충구역(6만7998ha), 총 103개 마을(어촌계)은 단순한 노동의 무대가 아니라 해녀들이 식량·생계, 생물다양성, 전통지식, 사회적 조직, 해양경관이라는 GIAHS의 다섯 가지 기준을 온전히 지켜온 터전이다.
2022년 집계된 3226명의 해녀가 채취한 활소라 약 1664톤 중 70% 이상은 수출되며, 이는 제주 패류 수출량의 80%를 차지한다. 해녀 어업은 전통을 넘어 지역사회와 세계 경제를 동시에 이어주는 살아 있는 산업이자, 국제적으로 인정받아야 할 지속가능한 시스템임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번 인터뷰는 두 해녀의 일·기술·환경·공동체를 입체적으로 묻고 답한 기록이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해녀는 ‘바닷속 채취 기술자’를 넘어 어장 관리자, 환경 감시자, 지식 전승자임을 확인하고, 해녀가 지켜야할 존재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Q. 해녀로 살아오며 ‘바다’는 어떤 의미였나

전유경: 해녀로서 가장 위대하다고 느끼는 건 공동체거든요. 저희는 다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연로하신 엄마들이 바다에 들어가면 ‘저 엄마 괜찮나’ 살피게 되고, 예전에 저한테 해산물 주셨던 엄마들께 제가 지금은 드립니다. 해녀는 제주의 엄마고, 바다도 엄마라고 생각해요. 일터를 넘어 서로를 돌보는 자리였어요.
고봉순: 바다의 상태가 ‘죽어가고 있다’고 느낄 수밖에 없어요. 잡풀(해조)이 있어야 우리 해녀들이 따 오는 물건들이 숨어 살 공간이 있는데, 그런 틈새가 없어요. 바닥이 백지처럼 변해버렸습니다. 그래도 종달리는 아직 깨끗하다고들 하지만, 예전하고는 차이가 크지요. 결국, 내겐 바다가 곧 삶이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곳이었고, 나이 들어서는 후배 해녀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터전이 되었지요.
Q. 해녀가 되기까지 입문 과정은
전유경: 해녀 학교가 있어서 서류 전형·면접을 통과하고 교육 과정을 거칩니다. 그다음 희망하는 어촌계에서 긴 인턴생활을 하고, 이후 어촌계에서 회의해 ‘만장일치’로 통과하면 정식 해녀가 돼요. 졸업 동기 32명 중 4명 정도만 정식해녀로서 정착했어요. 물질은 체력, 인내심, 공동체 적응력까지 다 필요해서 많은 분들이 중도에 포기합니다.

고봉순: 저는 해녀 학교가 없던 시절 사람입니다. 17살부터 원정 물질을 다녔어요. 경남 용호리, 충남 외연도, 전남 청산도까지 원정을 안 다닌 곳이 없지요. 결혼하고도 애 데리고 다니며 억척같이 했습니다. 당시에는 목숨 걸고 들어가야 했고, 실제로 죽을 고비도 여럿 넘겼습니다. 배우는 것도 오로지 선배들 옆에서 몸으로 익히는 방식이었어요.
Q. 공동체의 힘과 규율은 무엇인가
전유경: 초보(애기) 때 ‘게석 문화’가 컸어요. 제가 빈손이면 선배님들이 제 망사리에 해삼 같은 걸 넣어주셨어요. ‘한 번 받으면 가족’이라는 마음이 있어서, 개인 판매보다 같이 돕는 분위기였습니다. 위험하면 먼저 알려주고요. 어촌계는 만장일치로 받아들이는 가족 같은 곳입니다.
고봉순: 개인행동이 절대 없습니다. 우리 마을은 공동으로 판매하고, 책임자(회장) 지시에 맞춰 움직여요. 숨비소리만 들어도 서로 안심합니다. 은퇴한 연장자를 우대하는 문화도 물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돈을 버는 어린 해녀들이 어르신을 위한 모든 경비를 지원하는 일도 있습니다. 이런 관계가 유지되니 해녀가 수백 년 이어져 올 수 있었지요.
Q. 과거와 비교했을 때, 바다는 지금 어떻게 달라졌다고 체감하는지

전유경: 최근엔 아열대성 생물도 보이고, 미역은 재작년에 1년 치 저장도 못 할 정도였어요. 특히, 바다 주변 양식장에서 지하수를 쓰고 그 물을 바다에 버리면 염도가 떨어져 바다 식물들이 살지 못합니다. 저희가 성게 이식해 놓은 곳이 올해 ‘강처럼 더러운’ 바닥이 돼 다 죽어버린 곳도 있었어요. 또 수온이 높아지는 바람에 소라들이 떨어져 모래에 뒤집힌 채 죽은 걸 봤습니다. 계절별로 쓰레기 유입 경로도 달라요. 여름엔 동쪽, 겨울엔 서쪽, 남쪽 사계는 사철 들어옵니다.
고봉순: 성산포 축항이 바깥으로 많이 나와 순환이 막히고, 큰 배들이 자주 다닙니다. 우도 도항선 때문에 모래가 뒤집히고, 천초(해조)도 많이 없어졌어요. 검은 냄새 나는 모래가 쌓인 데도 있습니다. 예전엔 소라며 전복이 지천이었는데, 지금은 보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
Q. 요즘 해녀의 가장 큰 과제는 뭐라고 생각하나
전유경: 세대 단절이 커요. 올해 해녀의 수도 3000명 밑으로 떨어졌고, 신규로 30명 들어오는 것과 비교해 은퇴는 300명 이상입니다. 게다가 외부 인원의 야간 해루질로 야행성 생물까지 무분별하게 캐서 당근(중고거래)에 파는 일도 있어요. 먹을 만큼은 괜찮지만, 판매 목적으로 싹쓸이하면 생태계가 무너집니다. 나아가 양식장 오염수 배출 문제도 제도적 보완이 필요합니다. 양식장에서 퍼 올린 지하수와 배출수가 연안의 염분을 떨어뜨려, 우리가 성게를 심었던 바다가 강물처럼 탁해지고 바닥이 시커멓게 변해 전멸하는 걸 직접 봤습니다. 이런 현실을 행정이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고봉순: 우리는 지금 사리 때 6일씩, 한 달 두 번 순번 감시를 나가요. ‘돌 뒤집기’로 산란기 소라를 캐 가는 걸 막고, 알 없는 성게는 옮겨 내년을 준비합니다. 공동체가 지키지 않으면 금세 무너집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겐 이 감시가 불편할 수도 있지만, 이런 규율이 있어야 후세가 물질을 이어갈 수 있어요.
Q.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유경 : GIAHS 등재를 위한 심사를 할 때도 이런 것들을 굉장히 많이 물어봤거든요. 저로서는 다 긍정적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어요. 사실 그때는 긍정적으로 얘기하라고 주문을 좀 받았거든요. 풍력발전이 전통 경관을 해친다는 지적은 이미 많이 알려진 문제였고, 양식장 문제도 마찬가지였어요. 다만 양식장이 지하수를 쓰는 문제나, 생태계에 주는 직·간접적 영향까지는 잘 모르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리고 ‘농업유산으로 지정되고 나서 변화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사실은 타이틀 정도인 것 같아요. 1회 축제가 있었지만, 단발성으로 끝났고, 그걸로 뭘 더 하려는 생각이 아직은 없는 것 같아요
고봉순 : 이제는 세상이 우리를 인정해 준 거지요. 어업 유산으로 지정된 이후에 언론도 알리고, 더 품격 있게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예전에는 오래 움츠려 살던 세월이었는데, 이제는 자긍심이 생겼어요. ‘해녀의 부엌’ 공연을 맡아서 2018년, 2019년에 활동도 했고, 벨기에에 초청도 다녀왔습니다. 또 9월에는 농업유산 전문가들이 직접 내려온다고 하니, 해녀들이 하는 일에 대한 가치가 널리 알려지고 있다는 걸 느껴요.
Q. 도 행정에 바라는 점은
전유경: 해루질, 양식장 오염수 배출과 관련해 어촌계·해녀협회에서 도청에 민원을 많이 넣었어요. 그런데, 도청은 ‘알겠다, 노력하겠다’고만 대답하고 아직까지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너무 아쉬워요. 이런 답변만 반복되면 결국 공동체가 감당해야 할 피해가 더 커집니다.
고봉순: 지자체에 알릴 생각 자체를 못합니다. 우리 해녀 인생들을 위해 도에서 뭐라 신경 써줍니까? 조금 치료·장비 배려해 주는 것 말고는··· 그 이상 더 바랄 수도 없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Q8. 후배 해녀들에게 전해줄 말이 있다면
전유경: 지금도 해녀학교에서 강의를 합니다. 항상 말해요. 해녀일은 너무 힘들고, 생각보다 돈이 안 된다고. 그래도 해녀에게는 자기 힘만으로 해내는 직업이라 매력이 있어요. 물론, 여자들만의 집단이라 인간관계도 어렵고, 물때 출근이라 다른 일 병행도 쉽지 않지만, 정말 해녀가 되고 싶다면 버텨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후배들에게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선배들이 다 도와준다’는 점도 꼭 전하고 싶습니다.

고봉순: 해녀가, 우리가 없으면 해녀 문화가 없어집니다. 어린 해녀들이 잘 이어줬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서로 배려하고 단합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정신만 잊지 않는다면, 해녀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수 있습니다.
두 해녀가 보여준 공통의 윤리는 분명하다. 한 번에 많이가 아니라, 다음 해를 위해 남겨두는 채취, 규정과 순번을 지키는 자율 관리, 공동체 단합이다. 고봉순 회장이 말한 “개인 행동이 절대 없다”는 원칙과 순번 감시, 성게 알 보전을 위한 봉사 작업은 이러한 윤리를 제도처럼 굳혀 온 공동의 경험이다.
동시에 세대의 차이도 뚜렷하다. 은퇴를 앞둔 고봉순 회장은 ‘배려’와 ‘단합’으로 공동체를 지켜온 과거의 시간을 강조했고, 행정적 요구를 묻자 “그런 것까지는···” 하고 말을 아꼈다. 반면 전유경 해녀는 양식장 지하수 배출, 야간 해루질 남획, 항만 건설로 인한 퇴적 문제를 구체적 원인으로 지목하며, 규제 강화와 행정의 책임 있는 대책을 반복해서 요구해 왔다.

또한, GIAHS 지정에 대한 반응에서도 차이가 드러났다. 고봉순 회장은 세계가 해녀의 가치를 인정한 것에 자긍심을 표하며 활동 영역이 넓어진 변화를 이야기했지만, 전유경 해녀는 지정 이후에도 현장에 뚜렷한 제도적 지원이나 개선은 부족하다고 답했다. 이번 대화를 통해 해녀는 단순한 바닷속 채취자가 아니라 어장 관리자이자 환경 감시자, 전통 지식의 전승자임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세대별 시각 속에 ‘지속가능한 바다’를 위한 과제가 남아 있음을 다시금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목소리는 곧 GIAHS 액션 플랜의 우선 과제이기도 하다. 핵심구역에서의 산업용 동력어선·그물망 전면 금지, 완충구역의 체계적 관리, 쓰레기 유입과 염도 저하 같은 환경 문제 대응이 이뤄질 때, 해녀는 단순 채취자가 아니라 어장 관리자·환경 감시자·지식 전승자로서의 역할을 이어갈 수 있다.
따라서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 등재 추진은 단순한 명예가 아니다. 이는 해녀들이 지켜온 바다의 질서와 공동체적 지혜를 국제사회가 공인하는 지속가능한 시스템으로 재정의 하는 과정이다. 고봉순 회장이 보여준 공동체의 연대, 전유경 해녀가 제기한 제도 개선 요구가 맞물릴 때, 해녀 문화는 8만3603ha에 달하는 삶의 경관을 미래 세대에 실재하는 직업·공동체·지식으로 이어줄 것이다.
*기사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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